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년 5월 7일 ~ 1893년 11월 6일)는 낭만주의 시대 러시아 제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또한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 비창 교향곡의 작곡자이다.
그의 작품은 선율적 영감과 관현악법에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1860년대에는 러시아의 민족주의 음악파인 러시아 5인조의 지도자 밀리 발라키레프와 교제하여 국민악파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반에는 낭만주의 경향의 곡을 작곡하였으며 베토벤, 슈베르트의 전통을 러시아로 확산시켰다. 말년에는 유럽 순회 공연을 다녀 성공하기도 했으며, 작품 중 백조의 호수, 호두 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은 고전 발레 음악 중 최고의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차이콥스키는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나, 유년기부터 가정교사를 초빙하여 역사, 지리, 문학, 불어와 독어 등을 배운 탓인지 어학 쪽에 더욱 재능을 보여 6, 7세에 벌써 독어, 불어를 구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의 관습과 프랑스계인 어머니 때문에 프랑스인 여자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그 프랑스 출신 가정교사를 무척 좋아했으나 아버지 일리아가 모스크바로 전근하고, 다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면서 1848년에 그 가정교사는 그만두게 된다. 그녀를 잘 이해하고 따르던 소년 차이콥스키는 가정교사와 헤어질 때 받은 충격으로 말수 적은 아이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가정교사와의 이별의 충격은 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 기숙사 생활 때까지도 갔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처음부터 정규 음악 수업을 받지는 못했다. 법률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산발적으로 받은 성악, 피아노, 화성법 레슨이 음악교육의 전부였으며, 수시로 찾은 관현악단 공연과 오페라 관람을 통해 부족한 음악 교육을 보완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62년 법무부 서기로 재직하면서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새로 설립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야간반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법무부의 관료가 되었지만 법무부 서기직은 점점 음악에 몰두하는 그를 막을 만큼 흥미 있는 일이 못되었다. 하루는 넋을 잃은 채 공문서를 찢어 차근차근 씹어 먹다가 그것이 한 장도 남지 않게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일도 있다고 한다. 그는 곧 공무원직을 사임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주간반으로 전반, 음악에만 몰두하여 음악 학도가 되었다.
그 뒤 모스크바 음악원이 설립되자 교관으로 일하다가 안토니나 밀류코바(혼후 이름: 안토니나 차이콥스카야)와 결혼했으나 사이가 좋지 못했고, 철도 경영자 부호의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을 알게 돼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부터 교직을 떠나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은 1854년 14세 때의 《왈츠》에서 시작하여 1893년에 완성된 교향곡 제6번 《비창》으로 끝나지만, 개괄적으로 분류하면, 교향곡 6곡과 미완성 교향곡 1곡, 교향시 1곡, 오페라 11곡, 발레 곡 3곡 이외에도 다수의 실내악곡과 피아노곡, 가곡 및 협주곡 등이 있다.
- wikiPedia / 표트르 차이콥스키
Selected Sound
Pyotr Ilyich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Performer
- Seong-Jin Cho: 대한민국 서울 출신 피아니스트,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우승자
Composer
- Pyotr Ilyich Tchaikovsky: 낭만주의 시대의 러시아 제국 작곡가,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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