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Not Sent / Jeong Hoseung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부치지 않은 편지”는 정호승의 시집 <새벽편지-민음사>에 들어있는 시다. 간명한 시어로 우리 주변의 현실 이야기들을 인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정호승의 시는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쓰여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작품도 더러 있다.
시집 <새벽편지>에는 제목은 같으나 내용이 다른 2편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있으며, 오늘 [함께 읽는 글]에는 2편의 “부치지 않은 편지”와 해설, 정호승 시인의 약력, 노래가 된 시 등을 모아 소개하였다.
음악과 함께 일독하면서 시적 감흥을 더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앞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이슬에 새벽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 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理解와 感想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화자는 ‘그대’가 별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이 없어도 별이 뜨기’ 때문이다. 또한 화자는 어떤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본질적인 핵심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굳이 죽어서 별이 되지 않아도, ‘그대’가 갖고 있는 본질적 속성은 이미 별처럼 빛나는 존재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 시는 죽은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대가 이미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는 존재 자체라는 믿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온 세상을 목놓아 울게 하고 온 세상이 절망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화자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였다. 이런 ‘그대’는 실존했던 인물일 수도 있지만 화자의 꿈과 이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그대의 죽음은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사람의 죽음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억압 속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과 이상의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한 시대를 앞서 갔던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그 사람을 그리고 그대로 상징되는 꿈과 이상을 받아 주지 않고 죽음으로 몰아간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김광석의 노래(2000년 박찬욱 감독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OST)로도 익숙한 이 ‘부치지 않은 편지’는 1987년 1월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군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호승이 쓴 시라고 한다. 정호승은 최근 펴낸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서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썼으나 시는 시대를 초월한다”며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는 박종철 열사일 수도 있고, 서른세 살 예수의 나이 즈음에 서둘러 세상을 떠난 김광석일 수도 있고, 이 시대에 핍박받는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고 적고 있다.
정호승
略歷
본관은 동래(東萊).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중학교 1학년(62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도시 변두리에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고, 전국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68년 입학)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동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있다. 제3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정호승의 시는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는 평소의 소신처럼 쉬운 말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그려내곤 한다. 이에 1976년에는 김명인 · 김승희 · 김창완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해 쉬운 시를 쓰려 노력하기도 했다.
한편, 정호승의 몇몇 시는 양희은, 안치환 등 가수들에 의해 노래로 창작되어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시편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작곡)는 가수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었다.
개인적 서정을 쉽고 간명한 시어와 인상적인 이미지에 담아냈다는 평으로, 소월과 미당을 거쳐 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민중들의 삶에 대한 깊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표출해 왔으며 관찰의 성실함과 성찰의 진지함으로 민중들의 애환과 시대의 문제를 시 속에 형상화하였다.
1987년 시선집 《새벽편지》,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은 20년 이상 판을 거듭하면서 젊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정호승 詩 노래 12곡> 01.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곡, 김광석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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