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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 법정 스님

법정 스님 / 무소유 중 “가을은”
鑑賞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오늘 낮 사소한 일로 직장 동료를 서운하게 해준 일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불 아래서 주소록을 펼쳐 들고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법정 스님 이미지: 한지 창호, 흑백사진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歸巢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에 뿌리 박힌 지체肢體임을 비로소 알아 차린다.

 

ㅡ“가을은” / 법정스님, 무소유 20~21쪽

 


가을은 / 법정스님 대표 이미지: 낙엽, 나무, 이끼
법정 스님 / 무소유 중 가을은

 


 
무소유(2판)(양장본 HardCover)
지나치게 소유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 법정 스님이 전하는 깨우침의 이야기 『무소유』. 법정 스님의 이야기에 담긴 삶의 지혜는 종교를 넘어서 우리의 삶에 깊숙이 닿은 일상적인 것들을 포함한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쓴 지적 통찰의 글을 하나로 묶어서 소개한다. 소유와 집착에 대한 섬광같은 깨달음을 기록한 〈무소유〉를 비롯하여 〈가을은〉, 〈오해〉 등 35 편의 주옥같은 수필들을 만나보자.
저자
법정
출판
범우사
출판일
1999.08.05

 


법정(法頂) 스님
略歷

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우수영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는데, 하필 1950년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게 되었고, 1955년 통영 미래사로 입산해 이듬해 승려 효봉을 은사로 출가, 사미계를 받고 1959년에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의 선원에서 수행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등을 지냈다.

 

이후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 살면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2010년 3월 11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8세, 법랍 55세로 입적(入寂)하였다.


법정 스님 / 무소유 서적 표지 이미지
법정 스님 / 무소유


 

김수철 / 소리길(서편제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