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에서 비틀즈까지 대중이 선호하는 음악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물리학자들이 음악을 대하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있어 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우리 주변의 사회현상을 젊은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재조명한 논픽션 과학 이야기 책이다. 과학 콘서트라는 표제도 흥미롭지만 장별 주제와 내용도 다르지 않다. 머리글에서 저자는 말하기를, 20세기 후반들어 ‘복잡성의 과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복잡한 패턴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속에 담겨있는 법칙들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의 과학은 그동안 과학자들이 손대지 못했던 복잡한 자연 현상들 속에서 규칙성을 찾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왔다고 한다.
어떻든 복잡한 물리이론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바하에서 비틀즈까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음악에는 어떤 패턴이 담겨 있는지? 물리학자들이 찾은 규칙성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책 속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하자.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이 음악이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은 말러의 교향곡과 다르며, 쇼팽의 피아노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곡과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음악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음악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
만약 대중적 사랑을 받는 음악과 대중으로부터 잊혀진 수많은 음악간의 차이를 객관적인 물리량으로 비교할 수 있다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음악적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면 대중적 인기 곡을 얼마든지 양산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이 문제는 “1970년대부터 물리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왔다고 한다.
당시, UC 버클리 물리학과의 Richard F. Voss박사와 John Clarke 박사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그들은 멜로디의 변화 패턴을 파워 스펙트럼으로 조사해보면 무언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컨대, 피아노 곡의 경우, 피아노 건반의 위치 변화(멜로디)와 음들의 지속 시간(박자), 동시에 발생된 음들이 만들어 낸 조화(화음),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강약 등에 의해 곡의 특징이 결정된다. 작곡가의 스타일이란 아마도 이런 것들 속에 지문처럼 묻어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멜로디나 화음에 따라 음파의 주파수가 결정되고 키를 두드리는 강도에 따라 음파의 진폭이 달라진다. 또 박자는 하나의 음파가 지속되는 시간을 결정한다. 따라서 음들의 주파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석해 보면 곡의 주된 특징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이 연구자들은 먼저, 클래식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라디오 채널의 방송과 록음악 전문 방송을 각각 열두 시간씩 녹음했다. 이들은 음의 높낮이 분포보다는 음들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음 높이의 변화에 관한 파워 스펙트럼을 그려 보았다고 한다.
분석결과, 클래식 음악은 곡이 전개될 때 음의 변화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대개 다음 음은 근처의 낮은 음이나 높은 음으로 옮겨간다. 큰 음 폭으로 변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확히 그 빈도가 주파수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정의 변화폭이 클수록 한 곳에서 나오는 횟수는 점점 비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음악을 “1/f 음악”(여기서 f: frequency)이라고 한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곡일수록 1/f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반면 록 음악의 경우엔 고주파수 영역이 상대적으로 컸다. 한 곡을 듣다 보면 음이 크게 변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가 “네이처(1975년)”에 발표되자 많은 물리학자들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대한 음향학적 분석을 시도하게 되었으며, 히트한 음악과 그렇지 못한 곡들에 대한 스펙트럼 분석이 이어졌다.
흔히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곡일수록 1/f에 가깝고, 음악뿐만 아니라 새들의 울음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심장 박동 소리 등 자연의 소리들도 대부분 1/f의 패턴을 가진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어떤 물리학자는 로키 산맥에 줄지어 선 산봉우리들의 높낮이를 소리로 변환하여 아주 그럴듯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래서 컴퓨터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연의 패턴을 음악으로 변환하여 작곡하는 경우도 늘어났는데 이런 장르를 “프랙탈 음악(Fractal Music)”이라고 하며, 과학자들은 인간의 음악이 대부분 1/f 음악인 이유를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낸 것으로 설명하면서, 음악이 자연의 소리와 유사한 1/f 패턴일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註> 프랙탈(Fractal):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끝없이 반복되는 “자기 유사성을 갖는 기하학적 구조”
정재승
KAIST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대학교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컬럼비아대학교 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및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의사결정 신경과학이며, 이를 바탕으로 정신질환 대뇌 모델링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2009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서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는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등이 있다. - YES24.COM /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저자 소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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