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은 그 쇠를 먹는다 / 무소유
산이나 절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산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고찰을 찾으면 늘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코로나 19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되면서 상황이 악화될수록 인적이 드문 산사를 찾아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마음과 달리 집안에 갇혀 음악과 책으로 위로를 삼고 있다.
최근, 블로그 활동을 재개하면서 글감도 찾을 겸 법정스님의 산문집 “무소유”를 다시 읽고 있다. 이 책은 지나치게 소유욕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 법정스님이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내마음이 동하는 내용들을 간추려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려고 한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내용들은, 오래전 대학시절에 인연이 된 벗, 이연 이유경 화백이 법정스님의 산문을 바탕글로 하여 묵으로 그린 서화집 “그리운 바람길”에도 언급되어 있어서, 이 참에 이화백의 “그리운 바람길”에 수록된 묵화도 함께 소개할 생각이다.
어려운 시기에 법정스님의 말씀이 마치 산사의 바람에 싸여오는 풍경소리처럼 모두의 마음을 회유懷柔해 줄 수 있기 바라면서 함께 읽기를 권해본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두루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중략)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밖에 없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대인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回心,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고와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다.
그 어떤 수도나 수양이라 할지라도 이 마음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법구경에는 이런 비유가 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이와 같이 그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 아닌가.
-녹은 그 쇠를 먹는다 / 법정스님, 무소유 93-95쪽
법정 스님
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무소유 사상'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前 송광사 수련원 원장 직위를 지낸 그는 1955년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그러나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로 인해 17년 동안이나 살았던 불일암을 뒤로 하고 1992년 4월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 정진하게 된다.
2010년 3월 11일을 기하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8세, 법랍 55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그의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낸다.
Elina Garanča - Panis Angelicus(Mezzo-soprano: Elina Garanč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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