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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er

[작곡가 시리즈] 독일 후기 낭만파를 대표하는 대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년 6월 11일 ~ 1949년 9월 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바그너 이후 가장 뛰어난 독일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독일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대작곡가로서, 그의 1896년작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삽입곡으로 유명하다. 젊어서는 리스트의 영향을 받아, 교향시 《돈 후안》과 《교향곡 4번 알프스》를 쓰고, 그 후 바그너의 영향으로 오페라 《살로메》, 《장미의 기사》 등을 작곡하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프로필 이미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빈의 대중적인 왈츠 작곡가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나 그 자손들과는 아무 연관이 없으며, 카리용 제작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동명이인이다. 슈트라우스(Strauss)는 독일권의 흔한 성이고 이 성을 가진 음악가, 정치인도 많다.

 

19세기 끝 무렵에, 슈트라우스는 오페라로 관심을 돌렸다. 이 장르에 대한 그의 첫 두 시도인 《군트람(1894)》과 《사라진 불(1901)》는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1905년에 슈트라우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에 기초한 《살로메》를 제작하였고, 반응은 교향시 《돈 후안》때처럼 열정적이고 극단적이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이 이루어졌을 때, 대중의 강력한 항의에 공연은 단 한 번만 이루어진 후 끝나 버렸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상황의 상당수는 주제의 문제에 의한 것이었지만, 부정적 반응의 일부는 그 당시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슈트라우스의 불협화음 사용에 있었다. 그럼에도 오페라는 크게 성공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오페라에서 벌어들인 수입만으로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의 그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슈트라우스의 다음 오페라는 《엘렉트라》였는데, 불협화음을 한층 더 많이 사용했다. 이 곡은 슈트라우스가 시인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협력한 첫 오페라였다. 이들은 다른 많은 작품에서도 함께 했지만, 이후의 작품에서, 슈트라우스는 그의 화성 언어를 약간 순화시켰고, 그 결과물인 《장미의 기사》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슈트라우스는 1940년까지 주기적으로 오페라 작업을 지속하였으며, 그 가운데에는 호프만스탈과 협업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1912)》, 《그림자 없는 여인(1918)》, 《간주곡(1923)》, 《이집트의 헬레나(1927)》, 《아라벨라(1932)》가 있고, 《말 없는 여인(1934): 대본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본》, 《평화의 날(1936)》 과 《다프네: 요제프 그레고르와 츠바이크의 대본》, 《다나에의 사랑: 그레고르의 대본》, 그리고 《카프리치오: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대본》 등이 있다.

 

  • wikiPedia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Selected Sound

Richard G.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Tone poem, Op.30

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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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Mariss Jansons의 프로필 이미지
Conductor: Mariss Jan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