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 슬픔의 나이
鑑賞

별똥별 하나 떨어진다 해서
우주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내가 네게로부터 멀어진다 해서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밤은 세상에 있는 모든 별을 산 위로 데려오고
너는 네 안에 있던 기쁨 몇 개 내게로 데려왔지만
기쁨이 있다 해서 슬픔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기쁨을 더한 만큼 세상은 아주 조금 풍요로워졌을 뿐
달라진 건 없다.
꽃은 그 자리서 향기를 내뿜고 있고
둥근 나이테 새기며 나무는 조금 더
허공을 향해 팔을 뻗을 뿐이니
누구도 너와 내가 초대한 이별을
귀 기울여 듣는 이 없고
사라져 간 별똥별의 드리워진 꼬리에
아픔을 새겨 넣는 이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흔적 없이 지워질 것이다.
네가 내 영혼에 새겨 넣고
내가 네 영혼에 조그맣게 파놓은
우물이나 그리움 같은 것들도
자국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슬픔의 나이 / 김재진

김재진
略歷
대구 출신 시인.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같은 해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며 40년이 넘는 시간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도 문단과는 멀리 있고,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과는 거리를 둔 은둔자로서의 삶을 추구해온 그는 우연히 듣게 된 첼로 소리에 끌려 첼리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음대에 입학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방송사 피디로 일하며 방송 대상 작품상을 받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돌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인생의 신산(辛酸)을 겪었고, 오래 병석에 누워 고독한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가 벽에 입을 그려 달라고 청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갑자기 전시회를 열고, 첫 전시회의 그림이 완판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산다고 애쓰는 사람에게』 장편소설 『하늘로 가는 강』 어른을 위한 동화 『잠깐의 생』 『나무가 꾸는 꿈』 『엄마 냄새』 산문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의 치유는 너다』 등을 펴냈다. 현재 파주 교하에 있는 작업실 ‘민들레 행성’에서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 Yes24 / 김재진 시집,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저자소개 참조

리스트 / 위로 3번 D♭ 장조
Franz Liszt / Consolation No.3 in D flat major, S.172/3(Piano: Vladimir Horo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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